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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 이어 아시아인 히어로 등장시킨 마블 영화 세계…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 경향신문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한 장면. 션이라는 이름으로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샹치(오른쪽, 시무 리우)가 버스에서 아버지가 보낸 자객들과 대결하고 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한 장면. 션이라는 이름으로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샹치(오른쪽, 시무 리우)가 버스에서 아버지가 보낸 자객들과 대결하고 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아이언맨>(2008)으로 시작한 마블 영화 세계(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캡틴 아메리카, 토르 등 백인 남성 영웅들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시대가 바뀌고 문화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자 <블랙 팬서>(2018), <캡틴 마블>(2019)같이 흑인 남성, 백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나왔다. 숱한 마블 영화에서 늘 조연이었던 여성 스파이 블랙 위도의 단독 주연 영화는 올해 개봉했다.

9월1일 개봉하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감독 데스틴 대니얼 크리튼)은 MCU의 첫 아시아인 히어로 영화를 표방한다. 웬우(량차오웨이)는 전설의 무기 텐 링즈(10개의 링)의 힘을 빌려 오랜 시간 비밀조직의 수장으로 권력을 누려왔다. 세계사의 주요 분기점마다 이 조직은 암약했다. 아들 샹치(시무 리우)는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첫 임무를 받은 뒤 잠적해 미국에서 평범한 주차요원 션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션 앞에 아버지가 보낸 자객들이 나타난다. 션은 더 이상 숨어 지낼 수 없다는 생각에 연락이 끊겼던 여동생 샤링(장멍)을 찾아 나선다. 오랜 친구 케이티(아콰피나)가 션의 여정에 동행한다.

<블랙 팬서>와 비교하면 <샹치>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블랙 팬서>는 세계 최빈국으로 알려진 아프리카의 농업국가 와칸다가 사실 비브라늄이라는 특수금속을 가공해 첨단의 문명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을 내세웠다. 와칸다의 놀라운 과학문명은 ‘아프로퓨처리즘’이라 할 만한 시각효과로 구현됐다. 반면 <샹치>가 그리는 아시아 문명은 조금 더 전통적이다. 샹치와 웬우 조직이 향하는 전설의 마을 탈로는 동아시아적 이상향에 가깝다. 용, 해태 등 전설의 동물들이 주민들과 어울린다. 이들은 농사짓는 틈틈이 집단으로 무술 훈련을 한다. 탈로 마을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그들만의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며 살아간다. 주민들의 전통 의상이나 무기는 용의 비늘 등을 이용해 제작됐다. 와칸다 전사들의 의상, 무기가 외형만 전통을 따랐을 뿐, 첨단 과학 기술로 만들어졌다는 점과는 비교된다. 웬우가 어린 샹치를 훈련시키는 대목은 ‘엄격한 교육’이라는 동아시아적 전형에 근거한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한 장면. 웬우(왼쪽, 량차오웨이)는 어린 아들 샹치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한 장면. 웬우(왼쪽, 량차오웨이)는 어린 아들 샹치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샹치>가 동양에 대한 서양의 고정관념으로 가득찬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영화 초반부 제시되는 샹치와 케이티의 미국 체류 시절 묘사는 현대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시아계 청년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한다. 두 사람은 좋은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안정된 직장이 아니라 호텔 주차요원의 삶을 택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야 하지만 전날 밤늦게까지 노래방에서 신나게 논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전 인류의 절반이 사라졌다가 5년 뒤 돌아오는 사건이 벌어졌기에, 두 사람은 언제 삶이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가족들이 죽은 이들을 여전히 기려야 한다고 말하자, 케이티는 “잊고 살아가자(moving on)”고 말한다. 어머니가 잊고 사는 건 미국 방식이라고 말하자, 케이티는 반박한다. “엄마도 미국인이에요.” 바깥에서는 여느 미국 젊은이들과 비슷한 외양으로 살아가지만, 집 안에 들어서면서는 신발을 벗는다.

시무 리우는 30일 화상으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샹치는 내면의 불안, 결함을 갖고 있어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콰피나 역시 “케이티는 평범한 젊은이의 표상”이라며 “케이티는 자신이 원하는 것, 세상이 원하는 것, 부모님이 원하는 것 사이에 갈등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같은 첨단 과학에 기반한 무기, 토르가 가진 신적 능력, 스파이더맨, 헐크처럼 우연한 신체 변이에 따른 초능력은 샹치에게 없다. 웬우가 유래를 알 수 없는 무기인 텐 링즈를 사용하긴 하지만, 샹치의 전투력은 혹독한 육체 수련을 통해 스스로 획득한 힘이다. 영화 초반부 버스에서 벌어지는 샹치와 자객 사이의 싸움은 아시아 무술 영화의 액션 전통에 기반한다.

중화권 최고의 남우 량차오웨이가 마블 영화의 악역으로 등장한다는 소식에 중국 내의 우려도 있었으나, 량차오웨이가 연기한 웬우는 MCU에서 가장 복잡하고 설득력 있는 악역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때로 다정하면서도 때로 냉혹한 얼굴을 소화한 량차오웨이의 변화무쌍한 연기력이다. <아이언맨> 시리즈, <닥터 스트레인지> 등 기존 마블 영화와 연결 고리가 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종영 후 쿠키 영상은 두 개가 있다. 이 역시 향후 MCU의 전개를 암시한다. 마블은 올해 11월 <이터널스>, 12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개봉을 예고했다.

영화 <샹치>의 한 장면. 아버지 웬우(왼쪽)와 아들 샹치가 대결하고 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샹치>의 한 장면. 아버지 웬우(왼쪽)와 아들 샹치가 대결하고 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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